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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USA

나무

by S.jeanne 2017. 11. 2.


South Congress, Austin, TX


자전거를 타고 혹은 두 발로 숲을 달렸다. 강을 따라 우거진 나무들은 빽빽이 자라 생명력이 넘친다. 오랜 나무들을 끼고 생긴 술집과 라이브 바들은 오스틴다운 경쾌한 소리를 내며 함께 생명력을 과시한다. 멕시코에서 건너온 해골장식품들과 괴상한 벽화들이 오래되어 무거운 가지를 늘어트린 나무들과 그럴싸한 조화를 만들어내면 삶과 죽음의 경쾌한 전쟁을 구경하는 기분이 된다.


국제 환경비영리단체 Rainforest Partnership N. Lamar 34번가에서 가까운 곳, 처음 살던 집에서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다. 매일 해질녘이면 N. Lamar도로를 따라 난 숲길을 달렸다. 우거진 숲 사이를 달리면 하늘에 닿을 듯 뻗은 나무들에게 존경스러운 마음이 절로 들곤 했다. 내가 너희를 위해 일할 수 있게 해줘.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행복할거야. Rainforest Partnership의 면접을 앞둔 어느 날 속삭이며 기도의 마음을 올렸다.

 

처음 만난 Rainforest Partnership의 창립자인 니얀타는 갈퀴가 거센 사자머리를 한 인도 사람이었다. 탄자니아에서 나고 자라 어릴 적부터 열대 우림을 마음에 품어왔노라고 첫 대화에서 자신을 소개했다. 그 울창한 생명력이 이 땅에서 사라져 가는 것을 막으려는 숲을 수호하는 사자. 그의 첫 이미지였다. 그리곤 숲을 달리며 나무들과 나눴던 마음이 닿아 나는 지난 몇 개월 동안 그 단체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Rainforest Partnership은 아마존 열대 우림의 산림파괴를 막고 열대 우림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이 자신의 고유한 삶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나무가 좋아 일을 시작했듯이 니얀타도 열대 우림이 좋아 이 일을 시작했다. 니얀타와 나의 만남이 그랬듯이 모든 일들은 직관적이고 자연스럽게 이어졌음에도 단체 운영을 위해서는 과학적으로 들리는 숫자들과 사실을 그 모든 일들에 덧붙여야 했다. 단체 내의 대화는 한동안 온통 숫자와 사실들로 구성됐다. 일 년에 잘려나가는 나무의 수, 열대 우림에 살고 있는 생물 종의 수, 예상되는 지구 평균 온도의 상승 률, 오차 범위, 그리고 명백하게도 후원금의 양.


함께 일하며 서로 엇비슷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고 느끼던 팀원들 간에도 생명에 대한 사랑이나 나무에 대한 찬양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지금도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열대우림 벌목과 트럼프의 기후변화 협약 탈퇴 등으로 사무실은 늘 제법 긴장상태였으니까. 열대우림 벌목을 막기 위해선 범국가적인 합의와 약속, 자본의 흐름을 바꿀 힘이 필요했다. 이와 같은 현실을 인식하면서 나조차도 나의 순진함에 질렸을까? 점차 더 과학과 경제의 언어를 쓰도록 훈련해갔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니얀타와 함께 미국에서의 마지막 한 주를 마무리 하게 되었다. 함께 끝이 보이지 않는 너른 바위 위에 올라 누웠고 바람, 독수리, 나무, , 은하수와 전갈들을 나눴다. 그때 그는 내게 자신이 가진 모든 숲에 대한 기억들을 그 바람에 태워 전해주었다. 첫 만남에서와 같이 무척이나 직관적이고 자연스럽던 시간. 몇 개월을 일 하면서 나눴던 숲에 대한 객관의 이미지보다 몇 배는 뚜렷한 풍경. 이 땅을 함께 살아가며 잠시나마 시공을 나누는 인간들과 나무들간의 애정, 동지애, 그 관계들에 대한.


그제야 단체의 이름인 Rainforest Partnership의 의미를 알았다. 나무와 나, 그 관계. 그 관계 안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 서로를 지혜롭게 지키며 더불어 사는 삶. 시간이 흐르며 과학도, 경제도, 정치도 달라지지만 그 이전부터 나무들의 언어는 오래도록 있어왔다. 위로 자라나거나, 자라나지 않으며 담백한 방법으로 묵묵히 살아가는 나무들. 그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함께 살기 위해, 배곳의 언어로는 나를 덜어내고 너와 함께 살기 위해 매일 조금씩 객관적이지 않은, 감각적인 언어로 사고하며 살아가고 싶다. 나무들과 언어가 아닌 것으로 대화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들어낸 공기를 호흡하는 것. 너와 나와 땅과 물과 해와 나무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눈을 맞춰가야지.


나무, 매일 바라보고 묵상하는 건데도 글로 풀어내기는 쉽지 않다. 나무와의 짧은 대화는 언제부터인가 일상이었다. 어린 시절 마냥 좋은 친구이던 나무들이 살아내는 일이 버겁기도 하다는 걸 알 무렵부터는 동경의 대상이 되어왔다. 무서운 것이 네게는 없어[1]”보이던 날들. 그 뒤 최근 미국에서 잠시나마 나무를 지키기 위해 일한 이후로는, 다시 나무와 친구가 되었다. 무서운 것이 내게도 없노라고 생각하려 한다. 그 동안 사랑하며 지켜가며 살 수 있었듯이 앞으로도 더욱 말 없이 이해할 수 있는 존재들의 곁에서 더 행복하고, 사랑하고, 지켜갈 수 있길 기도한다.

 


  하니


  더 와닿는 글을 쓰고 싶어요. 앞으로 당분간 대학원에 가서 정교한 글을 쓰는 연습을 할 생각이지만,보다 더 쓰고 싶은 글은 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쓰는 편지이죠.



[1] 김광석 나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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