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tural Study/Books

Pierre Bourdieu&Loic Wacquant, "An invitation to Reflexive Sociology"

by Sociology/ FPE S.jeanne 2016. 12. 1.

3 <성찰적 사회학의 실천>

발제자: 최하니

 

1장.       직능의 전수

사회과학자들은 어떤 대상이 사회정치적 중요성을 가진다면 그것에 관한 담론 역시 충분히 중요성을 띠게 된다고 너무 쉽게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대상의 구성이다. 사유 양식의 힘은 사회적으로 대단치 않은 대상을 과학적 대상으로 구성하는 능력 속에서 가장 확실하게 증명된다. 또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주요 대상을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접근하는 능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직능의 교육”은 “실용적 전수방식”을 통해 이루어 져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고도로 추상적인 문제를 철저하게 실제적인 과학적 조작 절차로 번역하는지를 배워야만 한다. 이는 통상 ‘이론’과 ‘경험’에 대한 매우 특별한 관계를 전제로 한다. 그러한 기획은 직접 가이드 곁에서 실행하면서 배워야 한다. 연구자와 진정으로 함께 한다는 조건에서만 실제로 지도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는 본질적으로 작동 방식이 소통되어야 한다. 과학적 하비투스-표집 유형, 질문지, 코딩 문제 등-에 직면해서 교과서적인 설명 이외의 실질적 ‘반응’을 관찰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2장.       관계중심적으로 사유하기

이론, 방법론에 묻혀있던 ‘대상의 구성’또한 몹시 중요하다.

파슨스, 제필 알렉산더로 대표되는 이론과 라자스펠트로 대표되는 방법론의 분할은 인식론적 대립을 구축한다. 이 대립은 사실 특정한 시기 과학적 노동의 사회적 분업을 구성하는 것이다. 두 추상을 결합함으로써 구체성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두 가지 별개의 심급으로의 이러한 분할은 철저히 거부되어야 한다. 대상 구성에서 가장 경험적인 기술적 선택은 가장 이론적인 선택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표집방법과 데이터 수집, 분석 기술 등은 대상의 명확한 구성에 따라서만 긴요한 것이 된다. 어떤 경험 데이터는 오직 일련의 이론적 전제로부터 나온 가설의 집합에서만 증거로서 기능할 수 있다. 우리가 명확한 증거라고 이야기되는 것을 자명한 것으로 보는 것은 방법론을 통해 부과되고 주입되는 문화적 관례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명확한 증거에 대한 물신숭배는 때때로 그러한 명확한 증거의 정의 자체를 자명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험연구를 거부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또한, (연구자 스스로) 데이터 제시의 수사학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는 데이터와 연구 기법과 절차의 과시적인 나열로 변질될 때, 대상 구성에서의 기본적인 실수들을 숨기는 데 기여한다. 반면 적절한 결과에 대한 엄격하고 경제적인 제시는 날데이터(datum brutum)의 전시 정도에 의해 평가 당하면서 종종 ‘명확한 증거’ 형식의 프로토콜을 물신 숭배하는 이들의 선험적 의심을 자초하기도 한다. 과학적 경직성을 과학적 엄밀성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과학적 경직성은 지성과 창조의 강적일 따름이다.                                                         “금지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방법론 감시견들을 조심하라!

우리는 제기된 문제에 분석 기법들이 지니는 적합성을 보장하고 그 기법들의 이용 조건에 최대한의 주의를 (스스로) 기울여야만 한다. 그러나 여러분은 피할 수 없는 전략의 문제들에 의해 우리는 구성된 대상의 온갖 관련 요소들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 수행에 닿지 못하고 과학적 정당화를 결여한* 이론적 총체의 제한적 부분에 관한 집중적 연구를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실제로는 부분의 외부에 존재하는, 그러니까 부분과 다른 대상들과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원리나 메커니즘을 부분 안에서 구하는 위험을 겪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p371).

이때 과학적 대상을 구성하는 작업은 아주 구체적인 경험사례와 면밀하게 씨름할 것을 요구하며 자기 추진적인 조사 연구 프로그램으로 기능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적절한 데이터를 연결해야만 한다. 체계적인 답이 주어지기 쉬운, 그 자체로 테스트 될 수 있는 일관성 있는 관계 체계를 산출하기 쉬운, 체계적인 질문들을 생성해 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개별 사례를 보편사례로 만드는 오류 없이, 적어도 두 개의 대상을 함께 연구함으로써 대상의 관계에 대해 사유하는 태도이다.

 

3장.       근본적 의심

“자신에 대해 의문을 품지 못하는 과학적 실천은 엄밀히 말해,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p375).

과학적 대상의 구성은 어떤 무엇보다도 먼저 상식과의 단절을 요구한다. 우리가 단절해야만 하는 상식, 즉 모두가 공유하는 표상은 평범한 존재의 진부한 말이든 공식적인 재현이든 간에 종종 제도 안에 새겨져 있으며, 따라서 사회 조직의 객관성 안에도 그 구성원들의 마음속에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사회학자는 어떻게 근본적으로 의심하기를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일까?

자신이 대상으로 택한 문제들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이 문제들의 출현과 그 점진적 구성의 역사, 즉 종종 경쟁과 투쟁을 통해 완수되는 집단적 작업의 역사를 추적해야만 한다. 그러나 사회과학에서 인식론적 단절은 종종 사회적 단절, 그러니까 어떤 집단의 근본적인 믿음과의 단절, 때로는 전문가 집단의 핵심적인 신념과의 단절, 학자들의 공통의견을 정초한 공유된 확실성과의 단절이다. 사회학에서 근본적인 의심을 실천하기란 무법자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언어의 문제: 전문직이 사회 세계에 관해 말하고 그것을 생각하기 위해 이용하는 개념, 단어, 그리고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자. 언어는 사회학자에게 각별히 극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사실상 자연화된 사전 구성물의 거대한 저장고이다.

*직업의 문제: 나는 우리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업의 분류와 직무의 등급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는 개념들뿐만 아니라 직업, 혹은 전문직 개념 바로 그 자체도 의구심을 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 개념은 하나의 연구 전통 전체에 기반을 제공해 왔으며, 어떤 이들에게는 일종의 방법론적 모토 노릇을 해왔던 것이다. -지금까지 전문직개념을 사용한 연구들은 미흡한데(pp383-386 참조)- 만약 여러분이 전문직 개념을 대상으로서보다는 [분석의]도구로서 받아들인다면 순조롭게 작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위한 모든 외양, 심지어 과학성의 외양까지도 갖추게 될 것이다. 반대로 여러분이 진정으로 구성된 대상에 관한 연구에 착수하는 순간, 모든 것은 어려워진다. 이론적 진전은 그에 따른 방법론적 난점들을 낳기 때문이다.

 

4장.       이중 구속과 개종

실천의 객관적 표상은 실천의 원초적 경험에 맞서서 구성되어야만 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 자체로 나타나지 않으며 이러한 오인은 이데올로기에 상징적 효력을 부여한다. 이를테면 맑스주의는 모든 의구심을 초월한 채 사회적으로 이용될 때 대개의 경우 특출한 형식의 학문적 사전 구성이 되어버린다. 이 또한 과학이 더 많은 위험을 무릅쓰게 만드는 것이다. 학문적 상식을 신뢰하는 헛똑똑이는 학문적 구성 작업이 괄호 치고 한편에 제쳐 두어야만 했던 원초적 경험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잊는다.

범속한 상식, 혹은 범속한 형태의 학문적인 상식과 단절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단절의 수단들과도 단절해야 한다.

사회학의 가르침은 먼저 ‘새로운 안목을 부여’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새로운 시선’, 사회학적인 눈을 생산하는 것이 그 임무이다. 그리고 이것은 진정한 개종, 회심, 정신혁명, 사회세계에 대한 총체적 시각의 전환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일상적인 사정 구성물과 그 구성물의 구성 원리까지 모두 괄호 쳐야 한다(이중의 구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는 빼어난 과학적 감각의 겉모습을 가진 사고방식, 개념, 방법 들과의 단절을 전제로 한다.

 

5장.       참여 객관화

내가 참여 객관화라 불러 왔던 것(참여 관찰과 혼동하지 말 것)은 분명 가장 어려운 훈련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연구자들에게 대상에 이해관심을 느끼게 만드는 애착과 집착 가운데 가장 깊고 무의식적인 것과의 단절, 다시 말해, 그가 알고자 하는 대상과 맺는 관계와 관련된 모든 것과의 단절, 그가 정작 알고 싶어 하지는 않는 이 모든 것과의 단절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장 어렵지만 또한 가장 필수적인 훈련이기도 하다.

*호모아카데미쿠스 저작과정에서 겪은 경험 예시

때로 객관화 작업의 대상은 아주 특수하다. 대상 안에는 어떤 가능한 대상의 이해 원리들을 규정하는 강력한 사회적 결정요인들이 일부 은밀히 새겨져 있다. (1) 학문 장의 구성원이 되는 것, 그리고 그 장에서 특수한 위치를 점유하는 것과 연계된 특수한 이해 관심. (2) 학문세계, 사회세계 들 에서 사회적으로 구성된 지각범주가 은연중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이는 미학이라던지 인식론의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

성찰적인 태도는 중립적 관찰자의 입지를 경험하게 한다. 연구 조사 절차의 절대적인 비인격성 뒤에 숨어서 어디에나 있는 신처럼 동료이며 경쟁자들에게 절대적으로 군림할 수 있는 중립적 관찰자의 입장을 나는 경험했노라(p401 발제자의 임의적 번역). 또 나는 각종 전제와 편견들의 의식을 분석 안에 다시 끌어들이는 방법 또한 가지게 되었노라(p402, 발제자의 임의적 번역).

객관주의적 개관화의 한계에 대한 인식은 나로 하여금 사회 세계, 특히 학문 세계 안에서 제도들이 총체적으로 연계되어 있으며, 그 효과는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진실과 우리는 무엇이며 세계 안에서 무엇을 하는가에 관한 체험적 진실 사이의 간극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는 점을 깨닫게 했다.

*텔레비전토론방송에 관한 발제내용                  

관련된 행위자들이 이미 말하거나 행해 왔던 것을 다른 언어로 되풀이 말하고 일차적인 의미를 끌어내는 것, 또는 행위자들이 지니는 의식적인 의도의 산물로서의 의미를 단순하거나 오만하게 밝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방송 출연자들은 자기 위치에 가장 유리한 표상을 부과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공적인 시인은 배재한 채 의식적으로 명백한 것을 부정하는 것이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나아가 더 위험한 것은 단절의 문제이다. 분석가는 대상의 해석에서 자기 경쟁자들의 대상 속에 포함되고 이들도 경쟁을 위해 과학의 권위에 호소한다. 즉 해석가는 현상 혹은 결과에 관한 결정적인 발언을 제시 하기 위해 경쟁하는 해석가들 간의 투쟁에 연루되어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드러냄으로서(과학적 당위를 얻은 것처럼 보여서) 스스로를 감추는 숨겨진 실재를 파악해야 한다. 상호작용은 위계화된 장들의 교차점에서 새겨나는 순전히 현상적이며 가시적인 결과이다.

-       상호작용의 공간: 이는 언어 시장의 상황으로 기능한다. (1) 사전 구성된 공간으로 참가자 집단의 사회적 구성은 사전에 결정된다. 우리는 발언자 집단의 형성 법칙을 알아야만 하며 발언 접근 기회도 고려해야 한다. (2) 언론인은 이 게임 공간에 대해 어떤 지배 형식을 행사한다. 그는 객관성중립성의 규범을 부과하는 심판의 역할을 맡는다. (3) 상호작용의 공간은 여러 상이한 장들 사이의 교차가 실현되는 현장이다. 학문 장은 그 중 가장 멀리 떨어져있으며 덜 연루되어 있다. 학자는 가장 뒤 늦은 지혜, 거리 두는 태도를 가진 자이다. 이로부터 가능한 한 효과적인 객관성의 수사학을 생산하는 데 있어 학자는 구조적인 이점을 누린다.

수사학적 전략의 형태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상징권력의 관계를 분석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사회학자가 객관화 하려는 사람들이 바로 객관적인 객관화의 독점을 둘러싼 경쟁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때 담론의 힘만으로 게임의 꼭대기(메타 담론)에 이르기 위해서는 관찰자의 지각을 결정하는 것에 유의해야 하며 이때 관계의 객관화는 필연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사회학적 기술의 최고도 형식일) 참여 객관화는 참여 사실 자체에 새겨져 있는, 객관화에 대한 이해관심의 가급적 완전한 객관화에 기반을 두고, 동시에 이러한 이해관심과 그 위에 서 있는 표상들에 대한 괄호 치기에 기반을 두는 한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