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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ology/Song Sangyoung

천문학자 김담 600 돌

by Sociology/ FPE S.jeanne 2016. 11. 24.

천문학자 김담 600

 

송상용 (한림대 명예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

 

세종이 다스린 15세기 전반 조선은 문화의 꽃을 활짝 피웠다. 세종은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냈지만 특히 과학기술에서 두드러진 성공을 거두었다. 세종은 웅대한 과학기술정책을 세우고 온 나라의 인재들을 모아 과제를 맡겨 연구개발하게 했다. 세종대 과학에서 가장 볼 만한 성과는 제왕의 학문천문학에서 나왔다. 왕조가 새로 시작하면 반드시 새 역법을 내게 되어 있으므로 천문학은 세종에게 가장 중요한 학문일 수밖에 없었다.

올해 600 돌을 맞는 김담 (金淡) 은 태종 16(1416) 에 태어나 세종 17(1435) 문과 정시에 급제했고 집현전 정자로 뽑혔다. 김담은 역법을 맡고 있던 이순지 (李純之) 가 모친상을 당했을 때 승정원의 추천을 받아 발탁되었다. 세종은 이순지와 김담을 명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중국과 아랍의 역법을 연구하게 했다. 김담은 정흠지, 정초, 정인지를 이어 이순지와 함께 10년 만인 1442년에 칠정산 (七政算) 의 편찬을 마쳤는데 내편은 중국의 수시력과 대통력을 서울의 위도에 따라 교정한 것이고 외편은 중국에 도입된 회회 (이슬람) 력을 바로잡고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김담은 집현전에서 일한 17년 동안 간의대에서 대간의, 소간의, 규표, 혼의, 혼상 등 기기들을 가지고 관측하면서 칠정산을 교정했다. 그는 또한 혜성을 관측했고 역산을 해서 일월식을 예측했다.

일본은 조선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간 박안기에게 오카노이 겐테이 (岡野井玄貞) 가 배우고 그의 제자 시부카와 하루미 (澁川春海)1683년에 정향력 (貞享曆) 을 만들었으니 조선보다 241년 늦은 셈이다. 조선 초기에 우리가 중국, 아랍의 첨단과학을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고려 때부터 오래 축적된 아랍과학이 기초가 되었겠지만 세종의 탁월한 리더십과 과학자들의 무서운 노력의 결실이었다.

김담은 천문학 이외에도 양전 사업에 참여해 전세 개혁을 했고 언제공사의 계산을 했으며 우리 말의 음의를 보정한 업적을 남겼다. 서운관을 떠난 다음에는 전라도관찰사, 상주목사, 충주목사, 안동부사, 경주부윤을 역임했고 별세하기 한 해 전인 47살에 이조판서를 지냈다. 그가 태어난 영주의 집은 내리 세 사람의 판서를 냈다고 해서 삼판서고택으로 불린다. 김담은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김시습과 가까이 지냈고 불교, 부패 문제로 여섯 번이나 상소를 올린 대쪽 같은 유학자였다.

김담의 천문학에 관해서는 지난 30년 동안 석사논문 3(이면우 - 서울대, 김동빈 - 충북대, 김진혁 - 동국대) 과 박사논문 2(이은희 연세대 , 안영숙 - 충북대) 이 나왔고 논문이 20편 쯤 된다. 지난 924일 한국과학사학회, 소남천문학사연구소, 고등과학원 주최로 천문학자 김담 탄생 600주년 기념 학술회의가 열렸는데 8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1010일에는 과천과학관에서 천문학자 김담의 밤이 천문학자 (박창범) 와 역사학자 (문중양) 의 토크 쇼 형식으로 있었다. 내년 10월에는 김담 탄생 6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가 영주 동양대에서 있을 예정이다.

정부가 2003년에 연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는 31명의 과학기술자들이 헌정되었다. 그 가운데는 세종을 비롯해 세 분의 15세기 과학기술자들이 들어 있다. 천문기기를 제작한 이천과 장영실, 역법을 만든 이순지가 올랐는데 이순지의 공동연구자 김담이 빠진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내년에는 김담을 명예의 전당에 꼭 모셔 600 돌을 축하하기 바란다. 명예의 전당 사업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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